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동래부순절도

분류 회화
지정현황 국가지정문화재(보물)
연대 1760년
재질 비단에 채색
크기 96×145cm
유물번호 고대-가 81001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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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592년 4월 15일 부산진에 이어 동래성에 침입한 일본군에 맞서 싸운 동래부사 송상현(宋象賢, 1551~1592) 및 군민들의 항전과 순절을 기록한 그림이다. 화원 변박(卞璞)이 제작한 것으로, 민정중의 「임진유문(壬辰遺聞)」과 송시열의 「동래남문비(東萊 南門碑)」의 기록에 따라 여러 시점의 사건들을 선후 관계를 무시한 채 한 화면에 담아내고 있다. 화면 우상단에는 전날 저녁 무렵 경상좌병사(慶尙左兵使) 이각(李珏)이 말을 타고 성벽 밖으로 달아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. 화면 상단에서 중앙에 걸쳐 동래성이, 하단에는 일본군의 막사가 있으며 각 진영에 내걸린 황색의 수자기(帥字旗)와 적색의 일본기가 시각적 대조를 이룬다. 성벽 문루에는 부사 송상현이 일본군과 대치하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“길을 빌려달라[假我途]”는 목패에 대한 답으로 “(싸우다 죽는 것은 쉽지만)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[(戰死易, 假途難)]”는 목패가 던져져 있다. 무너진 성벽을 통로로 장창과 쌍칼을 든 일본군이 몰려들고 있으며 성 안에서는 백성 김상(金祥)과 여인 두 사람이 지붕에 올라 일본군에게 기와를 던지고 있다. 중앙의 전각 아래에는 붉은 관복 차림의 부사 송상현이 북쪽의 임금이 있는 곳을 향해 절을 올리고 장렬히 순절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. 이 그림은 「부산진순절도(釜山鎭殉節圖)」와 함께 임진왜란의 전투 장면을 묘사한 대표적 회화 유물로서,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운 민족적, 군사적 의미가 탁월한 작품이다. 동래 안락서원 기증품(1963년).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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